앰배서더가 된 이후 처음으로 프라다 2023 S/S 시즌 남성복 컬렉션에 다녀왔어요. ‘찐’으로 쇼를 즐기는 것 같더군요
-재현 심장이 뛸 만큼 설레었어요. 상상해 보지 않은 일이었고, 직접 본 런웨이는 기대 이상으로 재밌었고요. 패션을 사랑하는 사 람들과 음악, 모델들의 눈빛 모두 한데 얽혀 전에 없던 새로운 세계를 창조해내는 듯한 뜨거운 분위기에 흥분했던 것 같아요. 런웨이도 일종의 무대잖아요. 화보 촬영이나 공연할 때 혹은 뮤직비디오를 찍을 때 제가 느끼는 에너지와 비슷했어요. 저는 춤과 노래와 패션, 이 모든 영역이 연결돼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인스타그램을 보니 쇼 일정 외에도 밀란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낸 것 같아요. 노천 레스토랑에서 미식을 즐겼고, 밀라노 대성당도 가고, 심지어 길가의 비둘기도 찍었는데
-재현 오전에 잠깐 시간이 났어요. 무작정 낯선 거리를 걷는 걸 좋아해서 호텔 근처로 잠깐 나섰는데, 우연히 경치 좋은 카페를 발견했고 운 좋게 테라스에 앉았어요. 그때 분수대에 비둘기 두 마리가 가운데 기둥을 두고 마주 앉아 있더라고요. 예뻐서 카메라에 담으려는 순간, 한마리가 날아가버렸죠. 재밌는 스토리를 담은 것 같아 마음에 들어요.
당신과 프라다의 스토리도 흥미로워요. 지난해 9월 국내 최초로 프라다 컬렉션을 개인 SNS로 생중계한 이후 이제 앰배서더가 됐죠. 프라다와 자신의 어느 면이 닮았다고 생각하나요
-재현 기본에 충실하면서도 창의적인 요소가 공존하는 것. 제가 지향하는 점이에요. 가죽이나 리나일론 같은 소재를 활용하는 오리지널 리티도 분명하고요. 여러 작업을 하며 항상 느끼는 건 모든 일에는 ‘한 끗 차이’가 분명히 작용한다는 점이에요. 기본기는 평소 노력으로 만들어야 하는 부분이고, 그 다음 단계의 특별함이 새로움을 만들죠.
첫 돔 투어를 끝마쳤어요. 나고야부터 오사카 까지 ‘네오 시티: 재팬 - 더 링크’로 그간의 목마름을 해소했나요
-재현 오프닝에서 오브제에 올라 무대에 등장하면 시야가 관객으로 꽉 차요. 오랜만에 하는 공연이라 올라갈 때부터 울컥했죠. ‘영웅(英雄; Kick It)’을 선보일 차례라 절대 울면 안 된다 싶어 꾹 참았습니다(웃음). 무대를 하나씩 완성해 나가면서 노래하고 춤추길 잘했다는 생각을 제일 많이 했어요. 알고 있던 사실 이지만 다시금 분명히 깨달았죠.
-재현 자작곡을 부르고 싶어서 예전에 써둔 ‘Lost’를 꺼냈어요. 침대 하나를 두고 무대를 제 방처럼 연출하고 싶었고, 마치 이야기를 건네는 것처럼 느껴지길 바랐는데, 괜찮았나요? 적극적으로 준비한 무대라 새롭기도 하 고, 좀 더 다양한 얘기를 건네거나 낯선 모습으로 변해도 좋 겠다는 상상도 해봤어요.
2020년 <엘르> 인터뷰에서도 곡 작업에 대한 욕심을 내비쳤죠. “어떤 곡을 만들 수 있을지 스스로 기대된다”면서요
-재현 여전히 조금씩 곡을 쓰고 있는데 그 과정에서 내 색깔이 무엇인지 알게 되고, 음악 하는 친구들과 교류하면서 생각이 깊어지기도 했어요. 2년 전에 그런 말을 했다니. 꾸준히 해나가고 있는 것 같아 기분이 좋네요. 열심히 하다 보면 언젠가 자신 있게 들려줄 수 있는 때가 오지 않을까요(웃음).
최근 NCT 127의 성과가 뛰어났습니다. 올 초 서울가요대상에서 데뷔 이후 첫 대상을 받았고, 정규 3집 <Sticker>는 빌보드 200 차트 3위에 진입했어요. 지금의 NCT를 증명하는 증표 같다고 할까요
자부심은 엄청난 동력이죠. 데뷔 초에 비해 가장 달라진 면모는 무엇인가요. 좀 더 여유가 생겼고, 분명한 목표를 안고 달리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재현 그런 성과들 때문인지 예전에는 뭔가 제대로 증명하고 보여줘야 한다는 자세를 취했다면, 이제는 보답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사랑받는 것에 대한 책임감이라고 해야 할까요. 멤버들과도 요즘 데뷔 초를 자주 회상해요. 여유가 생겼다기보다 많은 추억이 작용했기 때문인 것 같아요.
‘NCT답다’를 2022년 버전으로 표현한다면. 낯선 세계관부터 음악적으로나 팀 구성 면에서도 새롭고 다양한 시도를 끊임없이 해왔습니다
-재현 100% 완벽하다고 할 순 없겠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컨셉트든, 음악적 방향이든 새로운 걸 제시해 나가는 느낌이 들어요. 예전에는 도전한다는 사실에 반응이 엇갈렸어요. 모두 좋아할수 있는 음악을 할 것인가, 조금 다른 우리만의 길을 갈 것인가의 기로에서 헤매기도 했지만 지금은 NCT의 도전적인 시도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이 생겼고 그 새로움으로 인정받을 때 자부심을 느껴요.
자부심은 엄청난 동력이죠. 데뷔 초에 비해 가장 달라진 면모는 무엇인가요. 좀 더 여유가 생겼고, 분명한 목표를 안고 달리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재현 평소와 똑같이 연습하고, 고민하고, 일에 대한 자세나 목표의식도 같아요. 제 일상은 변하지 않았는데 눈앞에 놓인 무언가가 조금씩 더 선명하고 분명해지고 있다는 느낌은 확실히 들어요. 지금 이 인터뷰를 하면서도 <엘르>와 만났던 2년 전에 비해 지금 고민이나 생각이 더 깊어진 것 같거든요. 물론 아직 갈 길이 멀지만, 그때에 비하면 분명 ‘잘하고 있어’라는 생각이 들 만큼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나답다고 여겨지는 부분이 있다면요
-재현 할 건 그냥 묵묵히 한다는 점? 스스로 잘 느끼지는 못하는데 저를 잘 아는 학창시절 친구들을 만나면 진‘ 짜 똑같다’고 얘기해요. 만나면 똑같은데 TV에 나오는 모습을 보면 너무 다른 느낌의 사람인 게 신기하고 이상하다고요(웃음).
좋아하는 것이나 하고 싶은 건 끝까지 해내는 것, 싫어하는 건 게으름 피우며 하지 않는 걸 스스로 장단점으로 꼽았어요. 자신에게 늘 객관적인가요
-재현 객관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하죠. ‘연구’라는 표현은 어색하지만 그 정도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자주 들여다봐요. 다만 관심이 없는 건 정말 귀찮아한다는 점이 참…(웃음).
친할머니가 무용수라고요. 데뷔 때부터 당신에 관해 늘 장문의 피드백을 꾹꾹 담아 메시지를 보내주신다는데, 점점 와닿는 말이 있나요
-재현 데뷔 초에는 무대나 노래하는 영상을 보고 손끝, 발끝 같은 기술적인 디테일에 피드백하시곤 했어요(웃음). 요즘은 한 사람으로서 전해주는 말들이 생겼죠. 얼마 전에 할머니와 등산을 다녀왔거든요. 아주 땀을 뻘뻘 흘렸는데, 할머니 말씀을 한 방향으로 정의하긴 어렵지만 인생 선배로서 삶을 살아가는 방법에 관해 얘기해 주시기 시작한 것 같아요.
한 인터뷰에서 “과거와 달리 활동을 이어가는 원동력을 타인이 아닌 스스로에게서 찾게 됐다”는 멋진 말을 남겼어요. 타인이 아닌 자신에게서 동력을 찾는 건 왜 중요할까요
-재현 내가 건강한 생각을 지녀야 주변 사람과도 건강할 수 있거든요. 타인에게 무언가를 기대하고 영향을 받기보단 스스로 중심을 찾아야 가능한 일이죠. 해보니 확실히 좋아요. 요즘은 정말 내편이라고 생각되는 이들에게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학창시절에는 학생회장이었고, 연습생 시절인 ‘SM 루키즈’ 때부터 팬덤이 생겼어요. K팝 아티스트로서나 패션 아이콘으로서의 행보도 거침없죠. 물 흐르듯 살아온 것처럼 보이는 재현에게도 정체된 것처럼 힘들었던 시기가 있었는지
-재현 진짜 힘들었던 때도 많았지만, 대놓고 힘들다고 표현하지 않는 편이에요. 돌이켜보면 다섯 살 무렵, 처음 미국에 갔을 때 아예 영어를 못했어요. 학교에 동양인이 저밖에 없었고요. 엄청 울었대요. 뒤에서 혼자 훌쩍이다가 언제 적응했는지도 모를 사이에 적응해 버렸죠. 다시 한국에 왔을 때는 전혀 다른 분위기가 낯설었고, 힘들었고, 다시 돌아가고 싶었어요. 지금은 또 언제 그랬냐는 듯 잘 지내고 있고요(웃음). 돌이켜보면 어떤 상황이든 잘 적응하는 편인 것 같아요. 힘든 요소들은 세상 어디에든 있으니까.
그런 당신을 요즘 힘들게 하는 요소가 무엇일지 궁금해지는데요
-재현 '어떻게 하면 캐리어를 빨리, 가볍고 알차게 꾸릴까?’(웃음). 오늘도 촬영을 마치면 일단 짐부터 정리해야 해요.
영감이나 즐거움을 주는 것은
-재현 특정한 사람보다 분위기에 영향을 받는 편이에요. 최근 이탈리아의 오래된 건물들에서 느꼈고, 늘 영감을 주는 건 서울의 한강이고요. 한강에 대한 추억은 학창시절부터 가득하죠. 그리고 <유 퀴즈 온 더 블럭>을 좋아해요. 다양한 뮤지션들이 라이브 공연을 펼치는 ‘NPR 타이니 데스크’도요!
당신도 누군가에게 즐거운 영감을 주는 존재일 테죠. 대중이 NCT 재현 혹은 정윤오의 어떤 면면을 발견해 주길 바라나요
-재현 그건 정말 제 몫인데…. 어떤 면을 감히 봐달라고 얘기할 수 없는. 그저 행동으로 보여줘야 하는 부분 아닐까요.
더 먼 길을 달려나갈 채비를 단단히 하고 있네요. 스스로 용기를 구해본다면
-재현 주변 사람에 대한 감사함은 많이 표현해 왔지만 사실 자신에게 그럴 기회는 잘 없었어요. 이참에 스스로에게 아주 잘하고 있다고 말해주고 싶네요. 하던 대로 더 과감히 나아가기를. 건강하게 다치지 않고 원하는 것에 가까워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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